처음으로 연애란 걸 한다고 이 곳에 고백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달 말이면 그 사람과 함께 한지 이백일이 된다. 반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그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.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싶을만치 행복한 적도 있었고, 당장이라도 그와의 끈을 놓아버리고 다시 혼자로 돌아가고 싶은 적도 있었다. 그의 문자 하나에 웃고, 조금의 무신경함에도 울고,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며, 또 난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한심해 하며 그렇게 우리의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다.
이렇듯 감정조절 못하는 어설픈 첫 연애인지라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는 내게 '처음'인 것들이 많다. 남자와 여자가 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을 그와 처음으로 함께 했다고 보아도 과연이 아니다. 손잡고 캠퍼스 산책하기, 단둘이 영화관 가기, 놀이공원 가기, 치즈떡볶이 기다리며 둘이서 공기 놀이, 서로가 쓴 시에 리플달기, 시험기간에 밤새 공부하기, 하루종일 같이 있다 헤어져 세시간 동안 통화하기, 그날이라고 짜증내기, 커플폰 커플폰줄 커플요금제, 모닝콜 하기, 품에 안겨 울기, 등등등 그리고… 키스.
부끄러운 얘기지만 지난 스물 한 해 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키스씬이 나오면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나도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. 종결어미가 '같다'인 것은 얼마 지나지 않은 그때가 참 어렴풋하기 때문이다. 아마 사랑을 시작하며 내 시간이 새로 씌여지는지 그가 옆에 없던 그때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. 아무튼 영화나 드라마 속의 선남선녀들의 키스씬을 보며, 그래도 그때까지는 그나마 순진했던 것 같은 나는, 대체 저걸 어떻게 하는 걸까 궁금해했던 것도 같다.
갑자기 사귀기 전 그가 해주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. 그의 친구가 그에게 키스를 하면 어떤 기분이냐고 물었다고 한다. 그래서 그가 대답해주었단다. 해삼이 입안에서 뭉클거리는 느낌이라고. 그냥 떠오르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해줬을 뿐인데, 꽤 파장이 컸던 모양으로, 그 친구분은 이 얘기가 자꾸 맴돌아 첫키스를 망쳐버렸다고 들었던 것 같다. 하지만 그는 알고 있을까. 그와 처음으로 키스 했을 때, 내 머릿속에도 이 얘기가 하염없이 떠돌고 있었다는 것을. 그러고 보니 그날의 일은 너무나 꿈만 같아 지금은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. 내 첫키스가 해삼맛이었는지, 달콤한 솜사탕 위에 동동 떠다니는 기분이었는지.
그러고 보면 요즘 커플들은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나면 빨리들 하는 모양이다. (이렇게 말하면 내가 좀 이상해지지만) 얼마쯤 전, 남자친구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. 담배를 많이 피는 남자친구 때문에 친구가 하도 걱정을 하길래 장난스레 이런 말을 툭 내뱉었다. "담배 피면 키스 안 해 준다고 해." 순진의 대명사와도 같은 친구라 키스라는 단어만 들어도 얼굴을 붉히길래 혼자 재미있어 하며 곧 잊어버렸다. 그런데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은 어느날 또 그 친구와 남자친구 담배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, 혹시나 싶어서 다시 한번 그 얘기를 했다. "담배 피면 키스 안 해준다고 해보라니까?" 그러자 그 친구가 말했다. "안 그래도 그랬는데 그럼 담배 피기 전에 빨리 키스하자고, 그러는 게 있지." 분명 며칠 지나지 않은 날이었는데… 이 아이가 이럴 정도면 남들은 볼 것도 없겠군 하고 생각했다.
키스. 상대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추며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한다. 손 잡고 걷거나 가만히 안고 있을 때 그의 심장소리를 듣는 것도 두근거리는 일이지만, 키스를 할 때면 묘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참 벅차다. 나는 키스가 좋다. 남들보다 처음이 늦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가끔은 왜 이렇게 좋은 걸 여태 못하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.
다가간 그의 귓가에서는 불가리 블루 향이 나고, 뺨에는 면도한 지 하루쯤 지난 그의 까슬함이 느껴지고, 입술이 닿으면 나보다 더 예쁜 그의 입술의 도톰하고 촉촉함에 설레며 팔에 소름이 돋기도 하고, 마지막으로 약간 쓴 것 같기도 하고 알싸한 것 같기도 한 담배향이 슬며시 퍼지면, 초록 빛깔 물고기들이 입 안에서 춤을 춘다. 얼마 후, 껴안은 팔을 조심스레 풀고 그의 착한 눈과 마주치면 나는 지금 죽어도 좋을 것 같다는 행복함을 느끼곤 한다. 이게 바로 키스의 맛이 아닐까.